갠지스 강가엔 이들처럼 껄쩍지근한 강물에서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수가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목욕이란 정신의 때를 말끔히 씻는다는 종교적인 행위이기에 이처럼 스스럼 없이 강물에 몸을 담글수가 있나 봅니다
히말라야의 4대 성지중 하나인 께다르나트의 축소판이라 믿고 있으며 늘 순례자들로 가득한 이곳에서 모델 촬영이
있는가 봅니다. 그래서 그들 틈에서 몇컷 담아 봤습니다
힌두교인들이 신이라 믿고있는 소들과 함께 뒤엉켜 있던 가트의 풍경
가트의 주변만 거닐어도 그곳에 바라나시가 있고, 인도의 모든것이 있다고 하던 바라나시 갠지스 강가 주변에 상업적이긴 하지만
이런 한글로 소개된 간판(?)도 구경할수가 있었습니다.
프라스틱 물병 수집도 어려운 사람들에겐 돈벌이가 됩니다
바라나시에서 이곳 "꼴까따"의 하우라역까지 오는 시간은 대기시간까지 합쳐 16시간만에 도착 하였습니다.
하우라 역앞엔 색다른 풍의 택시들이 줄지어 서서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곳 하우리 역에서 택시를 탈려면 택시표를 파는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해 타는 방법이 조금 싸다고 하여 줄지어 서서 기다리다
표를 구입해 택시를 타고 시내 방향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인도에서 움직이는 택시는 한쪽 빽밀러가 거의 아니 다 없었습니다. 혹 있는 택시도 빽밀러는 접고 다니더군요.
땅덩어리는 넓은데도 도로는 너무 좁게 만들어 좁은길에서 서로 빽밀러가 방해가 되던지 사진속의 택시처럼 모두가 없었습니다.
먼저 "꼴까따" 도시에 대하여 소개를 하겠습니다. 1772년부터 1912년까지 약 150년의 긴 시간동안 대영제국의 수도였던 탓에 꼴까따의 전체적인 모습은 런던의 구시가를 닮았다고 합니다. 허나 세포이의 항쟁이 실패로 끝나고 영국인들이 육성한 인도 지식인들이 민족주의 성향을 띠며 새로운 수도 뉴델리를 선택했기에 이곳 꼴까따의 부귀영화는 막을 내렸다고 합니다
길거리에 저런곳이 있어 그곳에서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하는 모습이 우리 이방인들에겐 특이하게 보였습니다.
또 길거리 공중변소도 저런식으로 있더군요..그럼 여자는 어떻게 이용하나? 글쎄올시다......
인도에서는 이곳 꼴까따에서만이 볼수있는 인력거 입니다.
정말 늙은 도시인지라 전차도 볼수가 있고 인력거도 볼수가 있으니 대단한 인도입니다
꼴까따 거리의 풍경입니다
꼴까따 거리의 풍경입니다
"꼴까따"의 옛이름은 "캘커타"였습니다. 켈커타의 모든 도로명에는 영국의 위인 이름이 붙여져 있어 민족적 자존심을 손상시킨다는 여론때문에 "꼴까따"로 개명했다 합니다 (인디라 간디의 동상)
빅토리아 메모리얼 입구에서 담아본 사진입니다
빅토리아 메모리얼" 1901년에 사망한 빅토리아 여왕을 기리는 추모관으로서 1906년 여왕 서거 5주년을 기리며 당시 영국의
총독이었던 "크루존"경의 발의하에 추모관 건립이 시작 되었는데 이 건물을 짓는데에도 15년이란 세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빅토리아 메모리얼의 전경
빅토리아 메모리얼의 뒤풍경
빅토리아 메모리얼의 공원같은 정원
이곳 정원엔 까마귀들도 많았는데 사람들이 주는 먹이에 익숙해져 우리 주변에서 머물던 까마귀들을 담아 봤습니다
빅토리아 메모리얼을 호수의 반영으로 담아 봤습니다
뉴 마켓 주변에 있던 극장앞에 젊은 무리들이 키타를 치며 젊음을 즐기고 있기에 담아 봤습니다.
(이 사진은 이메일로 사진속의 주인공에게 보내 줬습니다)
뉴 마켓 주변에 있던 극장
1847년에 세워진 60m 높이의 "성 바울 성당"
원래 성당 본관 위엔 뾰족탑이 있었는데 1897년과 1934년 꼴까따 일대를 휩쓴 대지진으로 무녀져 없어졌다고 합니다
성당 본관 앞 공원에 놓여져 있던 촛불
꼴까따 도로위에서 담아 온 싼타크로스..
인디라 간디의 동상이 있는 도로공원의 저녁풍경
꼴까따 거리의 저녁풍경
꼴까따의 여신 깔리를 모시는 깔리사원으로 가는 길목의 풍경. 깔리사원은 촬영하기에 조건이 너무 좋지않아 주변만 촬영하였습니다. 깔리사원에서는 지금도 아침10시 ~11시경에 염소가 산제물로 바쳐진다고 하여 그 모습을 볼려고 일찍암치 사원에 들어
갔으나 너무도 많은 인파에 밀려 밖으로 나왔습니다
깔리사원 주변에서 담아본 사진으로 힐체어를 손으로 돌려서 가게끔 만든것이 희안해 담아 봤습니다
아시아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인도가 낳은 세계적인 시인이며 사상가인 "라빈드란나뜨 타고르"의 생가
라빈드라나뜨 타고르는 위대한 성자라고 불리는 철학자 데벤드라나뜨의 아들로 우리에겐 "동방의 등불 꼬레아"라는 시를 통해
친숙해진 인물입니다
타고르 생가 안에서 각종 수제품을 만들어 팔고 있던 상인들
타고르 생가 안에서 각종 수제품을 만들어 팔고 있던 상인들
타고르 생가 안에서 각종 수제품을 만들어 팔고 있던 상인들
인도 동부지역의 자인교 사원중 가장 아름답다던 "쉬딸나뜨지 자인교 사원"을 가기위해 택시를 탓습니다.
우린 택시기사에게 자인교 사원이 있는 "맵"을 보여주며 그곳을 아냐고 물은뒤 오케이 하기에 탓더니 엉뚱한 곳에 내려 줬습니다
인도에선 길을 물을때에도 몰라도 아는체 하며 엉뚱한 곳을 알려주기 때문에 몇사람에게 계속해서 물어보라 하더군요.
쉬딸나뜨지 사원은 이런 뒷골목에 있었기에 택시기사도 제대로 몰랐으며 몇사람에게 묻고 물은뒤 택시기사에게 현지인이 통역을 해가며 겨우 찾아낸 쉬딸나뜨지 자인교 사원입니다
쉬딸나뜨지 사원은 오후 3시부터 입장이 된다기에 오후 1시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정문앞에서 문이 열리는 시간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쉬딸나뜨지 사원은 입구부터 화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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