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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인도 배낭여행

인도 여행집 3 (푸쉬카르,아그라)


인도 하면 카레가 떠오를 겁니다. 전 입이 좀 짧은탓으로 현지 음식은 거의 먹기가 좀 거북했기에 한국식당이 없으면 주로 빵으로 식사를 해결했습니다.그러나 숙소에 들어오면 아침 저녁은 한국에서 갖고간 식재료(된장,고추장,밑반찬)와 밥과 찌게는 미리 준비해간 미니 전기쿠커로 만들어 먹었습니다. 찌게는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넣고 감자와 양파, 매운고추 한두개정도,그리고 햄을 넣고 그속에 한국라면스프 한숟가락 정도 넣고 끓이면 그맛 아주 죽여줘요 ~

인도 국민음료 "짜이" 짜이는 몇가지가 혼합된 음료차인데 계피등 향신료를 끓인물에 홍차,우유,생강,등을 혼합해 만든 차인데

가격대는 10루피~20루피(200원~400원)이며 황토로 만든 투박한 도기에 담아 팔기도 했으며 얇은 재질의 프라스틱 컵에 담아 팔기도 했습니다. 도기는 한번 사용하고 나면 깨어버린답니다 (여행자 거리에서 짜이를 마시며..)

사원 지붕위의 화려한 문양의 조각품들..

화려한 조각에 비들기들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소들과 함께 거닐던 여행자 거리의 풍경

관광객을 상대로 낙타를 태워주는 곳

옛날 무기같은 악세사리를 파는곳

여행객들을 상대로 낙타투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도엔 워낙 종교가 많은지라 길가에 흔히 볼수있는 사원 입니다

과일을 팔고있던 할머니가 있었는데 손에는 작대기를 들고 소,원숭이들을 쫓고 있더군요

그런데 원숭이란 놈이 워낙 똑똑한 지라 할머니가 한눈을 파는 사이 옆으로 돌아가 긴 팔을 뻗어 사과를 한개 훔쳐갖고가

옆 담장에서 먹는 모습을 봤습니다..인도는 역시 인도이더군요.....


뭘봐 ! 내가 할머니 과일 하나 훔쳤지롱 ~


사원엔 어딜 가봐도 화려한 종교적인 조각이 눈에 띄였습니다


이곳 푸쉬카르에서 마지막 날 낙타 사파리를 떠났습니다. 사막 비슷한 곳에서 비박을 하고 돌아오는 일정입니다. 낙타란 놈이 키가 어찌나 크던지 엎드려 있을때 낙타 등허리에 타고 있으면 일어서는데 일어설땐 몸을 앞으로 숙여야 넘어지지 않는답니다



너무 오랜시간 낙타를 탓던 탓인지 엉덩이도 아파 중간에 쉬어가기도 했습니다

낙타를 타고 가며 서쪽으로 기운 햇살에 긴 그림자가 생기길래 내 모습의 그림자를 담아 봤습니다

양떼를 몰고 가던 모습을 실루엣으로 담아 봤습니다


해저무는 낙조에 담아 본 실루엣의 나의 모습


함께했던 일행들의 모습을 실루엣으로....

낙조를 담아 봤습니다

우린 이곳에서 하루밤 비박을 할겁니다.자리는 현지인들이 깔아놨지만 이곳에서의 비박이 아무래도 추울듯 싶어

한국에서 침낭을 미리 준비해 왔습니다


현지인들이 우리 일행을 먹일 저녁을 준비하고 있던 모습을 담아 봤습니다.

거지가 모닥불에 살찐다고 했던가요? 저 모닥불은 무척 따뜻했으며 모닥불을 쬐며 먹던 짜이맛 지금도 생각이 나는군요



밀가루 반죽을 얇게 만들어 불에 달군 돌에 붙여 만들어 먹는 "짜파티"와 토마토 몇조각 그리고 짜이로 저녁식사를 대신 했습니다


변두리 사막 근처 외곽에 가난한 사람들이 움막을 짓고 살던 곳으로 우리 일행이 낙타를 타고 저 동네를 지나자 어린 꼬마들이 몰려나와 고사리 같은 손을 버닐며 동냥을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어려운 사람들일수록 피임을 할수없어 아이들은 많이 낳았으며 그 아이들은 대물림을 해야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푸쉬카르에서 "아그라"로 가기위해 버스를 타고 아즈메르 역에 도착해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열차를 타러온 일가족을 담아 봤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열차는 이날도 안개 때문이라며 3시간이나 연착이 되고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아주 흔한 일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거닐며 이런 모습 저런 모습을 담아 봤습니다.

열차를 타려는 인파들 정말 대단하죠?

역사에서 열차를 기다리다 지쳐 바닥에 앉아 있거나 아예 자리를 깔고 누워 자고있는 광경도 종종 볼수가 있답니다


열차에 타고있던 어린 꼬맹이를 담아 봤습니다

열차를 9시간 타고 달려온 곳이 인도의 마지막 봉건왕조였던 무굴제국의 수도 "아그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리석 건물로 유명한 "따지마할"건물은 무굴제국의 5대 황제였던 "샤 자한"이 그가 가장 사랑했던 아내 "뭄따지마할"이 출산도중 사망하자 애통한 마음에 22년에 걸친 총 공사비 지금돈으로 환산해 우리돈으로 약 720억을 들여 만든

황후의 무덤 이랍니다."야무나"강변에 세워진 따지마할 이기에 이처럼 안개에 쌓여 있었으며 때문에 저로서는 좋은 사진을 못찍어 무척이나 안타까운 시간들 이였습니다.

 "뭄따지마할" "샤 자한"은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기에 그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머리가락이 하얗게 셀 정도로 충격을 받았으며 그녀가 10년만 더 살았어도 황제"샤 자한"은 과연 저런 무덤을 만들어 줬을까?하는 의문이 생겼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그녀의 짧은 생애가 저런 훌륭한 건축물을 탄생 시켰으며 후세에 영원한 샤 자한의 순애보를 남기게 되었나 봅니다

"야무나"강변에 세워진 따지마할은 동서 300m,남북 560m의 넓은 대지 위에 세워져 있으며 건물 앞에는 짜르 박 형식의 이슬람 정원이 있습니다.  우아한 돔이 인상적인 따지마할 본당 건물의 높이는 약 65m,거대한 중앙 돔을 사이에 두고 4개의 작은 돔이

 있으며 네 끝에는 미나레트라고 하는 4개의 첨탑이 있습니다

따지마할에서 담아 본 젊은 애엄마

미나레트 라고 부르는 4개의 첨탑중의 하나.

따지마할의 핵심은 완벽한 대칭, 돔과 아치가 보여주는 완벽한 곡선미, 그리고 대리석 장식인 "피에트라 두라"를 꼽을수 있답니다. 터기와 중국,러시아에서 수입된 색색의 준보석급의 돌들이 순백의 대리석들과 어우러저 따지마할을 한층더 신비롭게 하고

있으며, 따지마할 본당 내부로 들어가면 샤 자한과 몸따즈(왕비)의 가묘가 있습니다.

사상 최대의 무덤을 만든 샤 자한은 후세 도굴을 염려해 찐짜무덤은 지하에 은폐되어 있다고 하며,

어두운 탓에 그곳을 지키는 경비원들이 비춰주는 후레쉬 불빛에 가묘주위에 박혀있는 43가지나 된다는 보석들의 영롱함도

볼수가 있었습니다

따지마할 본당 내부로 들어갈려면 신발을 벗어야 하는데 신발을 보관해 주고 돈을 받는 저곳은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안개탓으로 대충 구경을 한뒤 점심식사를 위해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점심식사를하던 2층에서 담아 본 거리의 풍경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