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힘..나무가 자라면서 바위를 두 조각으로 만들었습니다
12월16일 오후 12시30분경 폴론나루와에서 전용버스를 타고 약3시간 만에 '담불라'에 왔습니다. 담불라는 '바위(Damba)'라는 뜻의 '담바'와 '샘'이란 뜻의 '율라(ulla)'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이다.
스리랑카 중부의 '마탈레'에 위치한 담불라 석굴 사원은 발라감 바후 1세가 타밀의 침공을 피해 몸을 숨겼던 곳으로, 그후 15년이 지나 아누라다푸라로 돌라온 뒤 과거에 대한 보답으로 조성한 것임
'황금 바위 사원'으로도 잘 알려진 이 사원은 스리랑카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보존이 잘 된 사원으로 1991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겉에서 보면 하나의 공간처럼 보이지만 5개의 동굴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총 153기의 불상과 왕의 석상 3기, 흰두 신상4기, 그리고 붓다의 삶을 그린 거대한 프레스코 벽화가 천정에 전시되어 있다.
담불라 석굴 사원의 풍경
담불라 석굴 사원의 풍경
담불라 석굴 사원의 풍경
담불라 석굴 사원의 풍경
담불라 석굴 사원의 풍경
담불라 석굴 사원의 풍경
담불라 석굴 사원의 풍경
담불라 석굴 사원의 풍경 (천정위의 불화도 너무 훌륭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담불라 석굴 사원의 풍경
담불라 석굴 사원의 풍경
담불라 석굴 사원의 풍경
담불라 석굴 사원의 풍경
담불라 석굴 사원의 풍경
담불라 석굴 사원의 풍경
담불라 석굴 사원의 풍경
담불라 석굴 사원의 풍경
담불라 석굴 사원의 풍경
담불라 석굴 사원의 풍경
담불라 석굴 사원의 풍경
겉에서 보면 하나의 공간처럼 보이지만 5개의 동굴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이 거대한 바위 공간을 이용해 동굴을 파고 그 속에 153기의 불상과 왕의 석상 3기, 흰두 신상4기를 만들었고, 그리고 붓다의 삶을 천정 벽화에 그려 놓았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석굴 사원을 나온 뒤 그 옛날 장인들의 노고에 머리가 숙여졌습니다
담불라 석굴 사원이 있는 이 바위산은 크기도 했지만 하나의 바위로 만들어 짐에 또 한번 감탄 했습니다
기념 사진을 찍고있던 현지인들..
눈부신 황금 대불이 있는 황금 사원을 거쳐 돌길을 따라 40분 정도 오르면 바위산 중턱에 담불라 석굴 사원 입구가 보인다.
황금 사원의 풍경
내가 묵었던 호텔 근처의 거리 풍경
내가 묵었던 호텔 근처의 거리 풍경
12월17일 오전 9시경, '시기리야' - 스리랑카 중부, 광활한 열대의 밀림 위에 외딴섬 처럼 우뚝 솟은 바위 요새. 이복동생에게 왕위를 빼앗길까 두려워 부왕을 죽이고 왕이 된 카사파 1세는 동생의 보복을 피해 해발 고도 370m의 바위산으로 수도를 옮기고 궁궐과 요새를 지었다. 그러나 10년뒤 군대를 이끌고 온 동생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짧고 불안한 영화를 누린 시기리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세계8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손꼽힐 만큼 많은 궁굼증과 볼거리를 남긴 곳이다
시기리야 천연 요새 왕궁 (전체적인 요새사진은 빌려옴)
시기리야 바위성으로 올라가는 길에 담아본 풍경...중간 중간에 옛 궁궐의 흔적이 보입니다
시기리야 바위성으로 올라가는 길에 담아본 풍경
시기리야 바위성으로 올라가는 길에 담아본 풍경..벌집을 조심하라는 표지판
시기리야 바위성으로 올라가는 길에 담아본 풍경
시기리야에 오르기 위해 많은 인파가 줄을 지어 오르고 있습니다
바위성 중턱까지 원형 계단을 통해 어렵게 올라가면 왼쪽으로 길게 바위 홈이 보이는데 그 바위 홈에 그려진 '천상의 여인들' 이라 불리는 유명한 프레스코화가 있다.
이곳이 세계적인 명소가 된 것은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예술작품으로 평가받는 시기리야 벽화 덕분이다. 벽화를 보려면 바위산 입구에서 낭떠러지 바위틈에 쇠줄을 매달아 만든 원통형 철망이 둘러쳐진 철제 계단을 20분 정도 올라야 한다. 강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위험천만한 철제 계단을 오르면 가슴을 훤히 드러낸 그 유명한 시기리야 벽화 미인이 시간을 뛰어넘어 미소로 반긴다. 시기리야 벽화는 카샤파왕이 부왕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왕의 시녀들이 압 살라라는 요정들을 시중들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가슴을 드러낸 미인이 왕족이고 옷을 입은 미인은 시녀라 전해진다. 이 시기리야 미인들은 당초 500명이 넘었다는데 지금은 훼손돼 18명의 모습만이 남아 있다.
미인도가 그려져 있던 곳엔 감시원들이 지켜서 있어서 직접 사진은 못찍어 오고 빌려온 것임을 알림니다.
바위엔 홈을 내 빗물이 따로 흐르도록 만든 흔적이 보입니다
바위 요새 정상에 힘겹게 올라 오면 첫번째로 보이는 곳입니다. 물을 저장해 두는 수조인듯..
시기리야 바위 요새의 풍경
중앙 궁전의 터
중앙 궁전의 터에서 내려다 본 풍경
궁궐 수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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