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셀로나의 최대 번화가인 '람브라스 거리'의 풍경
바로셀로나의 최대 번화가인 '람브라스 거리'의 풍경
바로셀로나의 최대 번화가인 '람브라스 거리'의 풍경 (큰건물 좌측 옆에 있는 건물도 스페인 최고의 건축가 '가우디'가 지은 '카사 바트요'건물)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팬이었던 페드로 밀라 이 캄프스가 카사 바트요를 보고 의뢰한 연립 주택으로, ‘카사 밀라(밀라의 집)’라는 이름보다 ‘라 페드레라(채석장)’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거대한 돌덩이처럼 생긴 건물의 외관에서 가우디가 추구하는 곡선과 자연에 가까운 디자인이 한눈에 느껴진다. 바다의 물결을 연상하게 하는 곡선의 외관과 미역 줄기를 닮은 철제 발코니는 주변 건축물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바르셀로나 시민들로부터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가 되었다. 옥상은 투구를 쓰고 있는 로마 병사와 타일로 만든 십자가 등 독특한 디자인의 굴뚝이 인상적이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바르셀로나의 풍경도 특별함이 느껴진다. 아래층에는 가우디의 작품들과 가우디에 관한 영상들을 관람할 수 있는 전시관이 있으며, 그 아래층에는 당시 생활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전시관이 있어 매우 흥미롭다. 1984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도 등재된 건축물이다.
바로셀로나의 최대 번화가인 '람브라스 거리'의 풍경
바로셀로나의 최대 번화가인 '람브라스 거리'의 풍경
동네 자그마한 어린이 놀이터의 풍경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1883년, 한 독실한 가톨릭 단체가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신자들의 모금으로 가우디에게 성당 건축을 맡겼다. 한 해 전에 다른 건축가가 처음 설계를 시작했던 것을 이어받았는데, 이 작업은 가우디가 1926년 사망할 때까지 계속되었고 그 이후에는 다른 건축가들이 넘겨받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의뢰 받은 다른 일과 함께 진행해 오다가 1914년에 이르러서는 오로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건축에만 매달렸으며, 심지어 성당 옆에 숙소를 만들고 그곳에서 일하며 살기까지 했다. 가우디는 본인이 살아 있을 때 성당 건축이 마무리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기도 했다. “내가 성당을 완성하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 않다. 난 늙을 테지만 내 뒤를 다른 사람들이 이어갈 것이다. 작품의 정신은 항상 지켜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작품과 함께 살아가는 세대의 것이다.”
가우디는 고딕 양식의 라틴 십자가형 플랜(한쪽이 나머지 셋보다 긴 십자가 모양의 도면)에서 시작하여 기하학적인 형태와 자연의 모티프를 사용해서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성당을 설계했다. 가우디가 1926년에 사망한 뒤, 1930년에 ‘예수 탄생’ 파사드와 종탑이 완성되었다. 스페인 내전 중에 가우디의 작업실에 화재가 일어나 설계도와 각종 사진, 자료 등이 불탔으나 그의 아이디어는 계속 이어졌고, 내전이 끝난 1939년 이후에는 속도는 느리지만 공사가 재개되었다
위쪽 중앙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나체상으로 되어 있어 의의를 제기했으나 예술가의 마음이라고~ 그 아래 오른편으로 아래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는 예수. 왼쪽 아래에 가우디의 얼굴로 표현한 예수의 제자.중앙의 전설의 성녀 베로니카가 십자가 지신 예수의 땀을 닦아주었는데,그 천에 나타난 예수의 얼굴까지 새겨놓았으며, 예수님의 발 왼쪽으로 사도 요한, 성모 마리아, 마리아 막달레나. 그 앞으로 빼꼼히 보이는 골고다 언덕을 의미하는 해골이라던데..
성당 안에 들어서면서 쭉 뻗은 나뭇가지 모양의 기둥, 천장의 꽃조각, 스테인드글라스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찬란한 빛,지금와서 생각해 보니 기억나는 것은, 분위기에 압도되어 숨죽여 뱉은 감탄사 뿐입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내부의 장미창 스테인드글라스를 비롯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아름답고 휘황찬란한 무지갯빛이 성당내부을 비추고 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내부의 풍경..많은 관광객들이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는듯이 보입니다
주출입구 3가지 중 하나인 '영광의 파사드' 영광의 파사드 쪽 청동문에는 paternoster (주기도문) 중에서 우리말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 이 구절을 우리 한글을 비롯한 전 세계 언어로 새겨놓았습니다.
영광의 파사드는 현재 출입을 할 수 없어 성당 내부에 실물 같은 사진만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내부의 풍경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내부의 풍경
동쪽 예수의 탄생과 유소년기를 표현한 탄생의 문이며,예수의 탄생을 반기는 내용들이 화려한 조각들로 표현되어 있다고 함.
'구엘공원'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함께 가우디의 최대 걸작으로 손꼽히는 구엘 공원은,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 백작이 평소 동경하던 영국의 전원 도시를 모델로 하여 바르셀로나의 부유층을 위한 전원 주택 단지를 만들고자 계획했던 곳이다. 1900년부터 약 14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원래 계획대로라면 60채 이상 분양되어야 했지만 공사가 진행되던 중 구엘이 사망하면서, 3채만 분양되고 미완성 단지로 남게 되었다. 공원 입구에는 관리실과 경비들의 숙소로 사용될 예정이었던 2채의 집이 있는데 마치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모습이다. 그 앞으로는 알록달록한 타일 조각으로 옷을 입은 도마뱀 분수와 그리스 신전을 모티브로 삼은 시장이 있다. 시장의 지붕 위에는 구엘 공원의 꽃이라 불리는 타일 벤치가 있는데, 마치 누워 있는 용이나 바다의 파도처럼 구불구불한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동화 속으로 초대하고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지중해의 모습은 해 질 녘에 더 빛을 발한다.
공원 입구에는 관리실과 경비들의 숙소로 사용될 예정이었던 2채의 집이 있는데 마치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모습이다
공원 입구에는 관리실과 경비들의 숙소로 사용될 예정이었던 2채의 집이 있는데 마치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모습이다
구엘공원의 풍경
구엘공원의 풍경
구엘공원의 풍경
구엘공원의 풍경
구엘공원의 풍경
'구엘 공원의 산책로' 돌기둥이 세워진 산책로 역시 최대한 주변 환경과 어울리도록 나무 모양처럼 만들었는데, 부지를 닦을 때 나온 돌을 활용한 것이다.
'구엘 공원의 산책로'의 풍경
'구엘 공원의 산책로'의 풍경
구엘공원에서 비둘기 모이를 주던 아가씨를 담아 봤습니다
그리고 이사진은 이메일로 본인들에게 보내 줬습니다
부지를 닦을 때 나온 돌을 활용하여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니 참으로 '가우디'는 천재인듯 함
구엘공원의 풍경
구엘공원의 풍경
구엘공원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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